무연사회에서 살기가 정말 두렵다
2013.10.21 12:52
무연사회에서 살기가 정말 두렵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하니 살아있는 생물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생(生) 노(老) 병(病) 사(死)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하늘아래 단 한 사람도 없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뿐이다. 거의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혼자 왔으니 저승으로 갈 때 역시 홀로 간다. 그런데 왜 홀로 가는 고독사(孤獨死)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가?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외롭게 홀로 떠나기 싫다는 것이겠지.
일본 언론이 만든 신조어, 고독(孤獨)사, 고립(孤立)사, 독거(獨居)사, 돌연(突然)사와, 무연(無緣)사, 한국 정부기관이 사망자집계에 사용하는 변사(變死), 무연고(無緣故) 사망자의 공통점은 도대체 무엇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을 나타내는 단어 즉 죽을 사(死)자이다. 평소엔 우리 모두 잊고 살지만 삶과 죽음은 사실상 표리관계이다. 따라서 평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감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홀로 쓸쓸히 생을 끝내는 것 보다는 후손들의 애도와 슬픔 속에 눈을 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연사를 조장하는 무연사회가 되면 이 작은 바람도 쉽게 이뤄지기 어려울지 모른다.
지난 10월 10일 누리꾼들이 맥도날드 할머니라고 부르던 73세 ‘권하자’ 할머니가 지병인 암으로 사망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영자신문을 읽으며 노숙하던 이 백발노인은 서울의 명문 여대를 졸업한 후 10년 넘게 외교부 직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인텔리' 할머니이었다. 그러나 주위에 피붙이가 한 사람도 없어 병원에서 외롭게 숨졌다고 한다.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암이 다 퍼져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전한다. 무연고에 집도 의료보험도 없는, 평생 미혼이었던 이 할머니는 가까운 일가친척조차 없어 당국에 의해 ‘무연고 변사자’로 처리, 시신은 화장됐다.
이 할머니처럼 유족을 찾지 못한 사망자는 행정당국의 ‘무연고 시체 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처리된다. 사망 이후 일정기간 동안 유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가 대신해서 화장을 해준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한 뒤 근처에 있는 20평 남짓한 ‘무연고 추모의 집’에 유골을 10년 동안 안치한다.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무연고 사망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서울시 복지건강실에 따르면, 서울시가 처리한 무연고 사망자는, 2009년 206명, 2010년 273명, 2011년 301명으로 점차 늘고 있다. 복지건강실의 한 관계자는 “노숙하다 돌아가신 분, 가족이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분 등이 무연고 사망자에 속해 있다”라고 말한다.
나라 전체로 본 무연고 사망자 역시 늘고 있다. 2009년 587명, 2010년 636명, 2011년 727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외로운 죽음 이후 뒤늦게 알고 달려온 가족들에게 시신이 인도되는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 ‘고독사’ 숫자는 이 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근래 부산에서 일어난 백골 주검 사건보도를 보면 우리사회도 일본처럼 무연(無緣) 사회로 변화되고 있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 감추기 어렵다. 지난 9월 말에는 부산 도심 한 주택에서 숨진 지 5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김 아무개 할머니의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집주인은 "백골 상태의 할머니가 두꺼운 겨울옷을 9겹이나 껴입고 손에는 목장갑을 낀 상태로 반듯이 누운 채 발견됐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 이웃사람이 살았지만 할머니의 사망 사실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경찰은 김씨의 건강보험료가 2008년 8월 이후 체납돼 독촉장이 쌓여 있었고 이웃들이 김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08년이었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사망 시점이 2008년 연말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혼인 김씨는 1999년부터 이 집에 보증금 700만원, 월세 10만원 조건으로 거주를 시작했으나 이웃과 전혀 왕래가 없었다. 사찰 출입 외에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보니 직계가족도 없었다. 먼 피붙이라고는 10여 년 전에 연락이 끊어진 이복오빠 한 명뿐이라서 김씨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음울한 언론보도는 늙은이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백골시신이라는 충격적인 이 사건은 독거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나게 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현재, 홀로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125만2천명으로 전체 노인의 20.4%나 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의하면 독거노인은 2020년 174만5천명(21.6%), 2030년 282만명(22.2%), 2035년에는 343만명(23.2%)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면 자녀와 따로 살 가능성이 더 높으며, 이혼과 독신가구 역시 점점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독거노인이 증가하면 상대적으로 ‘고독사’하는 노인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독사라는 신조어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정부는 지난 2007년도부터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 라는 것을 시작해서 다양한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24시간 상담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민간기업과 연계해서 상수도나 도시 가스 검침 시에 이상 징후를 확인하며, 지역 신문이나 우유 배달원들을 활용, 평시 독거노인의 주거에 문제가 발생 시에 관계기관에 연락한다.
한국에도 독거노인을 관리하는 서비스가 많다. 보호가 필요한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지자체에서 주 1회 이상 가정방문, 안전 확인 등을 하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 사회복지법인이 주체가 돼 도시락배달, 상담서비스를 하는 재가노인지원서비스 등이 있다. 전남 의령 같은 소도시의 경우 처럼 노인들을 위한 공동거주지제도를 실시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제도들이 기초생활수급자 위주라 형편이 다른 상당수 노인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 설상가상으로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사망자 김씨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어서 지자체의 관리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기 전인 지난 1월과 2월에는 부산 부민동과 남부민동에서 각각 숨진 지 6년, 2년 된 백골시신이 잇따라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었다. 비슷한 시기 해운대구에서도 3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8개월 만에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그 이후에도 배구선수 출신의 60대 할머니가 숨진 지 20여일 만에 발견되는 등 이제 우리주위에선 연고 없는 죽음소식이 시중에서 보통 들을 수 있는 예삿일처럼 되고 있다. 노인대국 일본처럼 무연고 사회가 되고 있다.
올해 초 부산 부민동에서 혼자 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50대 남성의 시신은 사망한지 거의 6년 만에 백골상태로 발견,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대도시 변두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발견된 그의 부패한 시신은 이미 백골상태였다. 시신을 정밀 조사한 결과 이 남성은 적어도 6년 전에 숨진 것으로 보인다. 셋집 보일러실에서 숨진 김씨 집 현관문 앞에는 각종 고지서와 독촉장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안방에 걸려 있는 달력은 2006년 11월에 머물러 있었다. 지난 2002년 모시고 살던 노모와 사별한 뒤 형제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막노동을 하며 혼자 살았다고 한다. 친척은 물론 이웃과도 단절된 채 쓸쓸한 삶을 살아온 김씨가 유일하게 관리한 건 어머니 제사에 쓸 제기뿐이었다.
고독사는 이제 해외 교민에게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170만 명 이상의 동포가 거주하는 미국에서도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한인교포 노인이 혼자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바 없다. 미국 경찰의 사망자통계에 ‘고독사’라는 항목은 없다. 따라서 공식집계도 없다. 그러나 홀로 사망한 노인에 대한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이 주장한다.
먼저 미국에서 사망한 한국 국적 교민의 숫자다. 외교통상부의 국정감사 보고자료에 따르면, 매년 70~90명 가량의 한국인이 미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범죄나 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은 제외된 자연사다. 일반적으로 미국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지닌 한인노인들이 자연사한 경우 보통 가족이 장례를 치르며, 한국 정부당국에 알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외교부가 집계한 사망자중 상당수가 고독사한 재미교포노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애틀랜타 총영사관 ‘구만섭’ 영사는 “한국대사관에 접수되는 교포노인 사망보고 가운데는 홀로 죽어 연고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다음 문제는 미국 내 한인 독거노인 숫자의 증가다. 늙은이가 노년에 홀로 산다는 것은 곧 홀로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0년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인구는 170만6822명, 65세 이상 인구는 14만8244명으로, 전체 한인 인구의 8.7%가 노인이다. 이 가운데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은 11만3341명인 반면, 독거노인은 2만8274명이다. 65세 이상 독거 한인 노인은 2000년 1만3114명에서 2010년 2만8274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들은 모두 잠재적 고독사 예비군, 즉 혼자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인 봉사단체 관계자들이 말한다.
애틀랜타 한인회 패밀리센터 ‘이순희’ 소장은 “한인 노인이 혼자 죽는다는 것은 한인 정서상 예전에는 좀처럼 없었던 일”이라며 “가족 없는 타향에서 아무도 모른 채 쓸쓸히 죽은 이들의 사연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제 ‘고독한 죽음’은 이민자의 천국 미국에서 처음 생긴 일이 아니다. 애틀랜타 한인회 패밀리센터에 따르면, 2010년 5월과 12월에도 60대 한인여성이 각각 홀로 사망했지만. 현재 얼마나 많은 한인 노인이 ‘고독사’하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다고 한다. 경찰통계나 인구센서스에는 ‘고독사’에 대한 분류나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인사회나 봉사단체의 관련자들은 ‘고독사’의 심각성을 점차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고독사는 일본에선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낮 익은 말이다. 일상적으로 겪는 일의 하나가 된 것 같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일본 감독 ‘제제 다카히사’의 '안토키노이노치'였다. 우리나라에선 '고독사(孤獨死)'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사다 마사시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이 이 영화에는 '고독사'를 처리하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홀로 사망한 노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두 명의 젊은이들이 죽음을 대면하며, 세상과 사랑, 그리고 자신의 내면 세계를 성찰하면서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고령화된 일본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고독사 또는 무연사(無緣死)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인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고독사와 무연사(無緣死), 또는'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무연사회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없는 사회', '인연이 없는 사회'라는 뜻으로 고령화와 저출산,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 안전망 해체가 가져온 삭막한 현실을 묘사한 말이다. 무연사회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아무도 모른 채 수개월째 방치되는 사례도 많다. 무연사와 고독사는 이래서 생겨난 말이다. 2011년 기준으로 일본에선 사망한지 이틀이 지나 발견된 고독사가 2만6천명에 달한다.
일본은 고독사하기 쉬운 사람을 몇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고령자이다. 다음이 배우자와 사별한 독신남성. 세 번째는 가까운 곳에 친척이 살지 않는 사람이 고독사의 위험이 높다고 한다. 다음이 정년퇴직 등으로 적당한 일거리가 없는 사람, 다섯 번째가 만성병 환자, 끝으로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등에 홀로 사는 노인이다. 우리 한국사회의 독거노인의 형편과 다른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무연사와 고독사(孤獨死)를 조장하는 무연사회 시대에서 노인의 날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매년 10월은 경로의 달이며,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만든 법정 기념일이다. 이날을 지키는 것은 전통 미풍양속인 경로효친 의식을 고양하고, 노인문제에 대한 국가적 대책을 마련하며 범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막연한 구호 보다는 주위의 애정 어린 관심이다.
무릇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인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세상에 올 때는 혼자 와서, 사는 동안은 주위와 함께 살다가, 저승으로 갈 때는 역시 홀로 가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들과 같이 갈 수는 없지만 그들의 전송을 받으며 떠나는 저승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자랑하는 경로효친의 감춰진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속절없이 늙어가니 무연사회에서 살아가기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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