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스트처치 한인회 역사

한인회 역사

크라이스트처치 한인 역사

남섬 한인

뉴질랜드 남섬에 발을 디딘 최초의 한인은 1972년부터 녹용 사업을 한 김경준 씨(작고)로 알려졌다. 당시까지 수출용 고기 용도 이외에 달리 활용가치가 없던 녹용을 가공해 수출하기 시작한 공로로 뉴질랜드 사슴농민협회는 1994년 김 씨에게 녹용 개척자 상을 수여했다. 그 후 이성방, 박정식, 김용관, 이연수 씨 등이 차례로 입국해 녹용 사업 규모가 크게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부터 크라이스트처치를 중심으로 한인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녹용 사업에 진출한 교민은 2000년대 초만 해도 여럿 있었으나 자기들이 쓸모가 없어서 버리던 사슴 뿔을 헐값에 매입, 가공해서 비싸게 수출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돈이 되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알아채린 농장주들이 제값을 받겠다고 나서고 협회나 정부 차원에서 각종 규제가 가해지면서 많은 교민 업체가 2000년대 초·중반 문을 닫았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이준현 씨가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1990년 이전까지 남섬 전역에는 50여 가구의 소수 한국인만 정착하고 있었으며 티마루를 중심으로 원양어업 업체들이 자리 잡고 선원들이 부정기적으로 들르는 정도였다. 이후 1980년대 말 투자이민 개방에 이어 1991년부터 이른바 점수제 이민이라는 뉴질랜드 정부의 새로운 기술사업 이민정책 실시를 계기로 이민이 본격화하면서 비로소 남섬에도 한인사회가 커지게 됐으며 소규모의 크라이스트처치 한인회도 1991년 출범했다.

당시 고국을 떠나온 뉴질랜드 이민자 대부분이 북섬의 오클랜드에 정착했고 그중 일부가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를 새로운 삶 터로 정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이곳 시내에도 리카턴 지역을 중심으로 식당과 기념품점 등 한인업소가 들어섰다. 이 시기에 한인교회도 생겨나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동포신문과 방송, 한국학교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1993년부터 뉴질랜드에 주 3회 취항한 대한항공 직항편 중 주 1편이 이듬해 7월부터 크라이스트처치까지 연장 운항에 들어갔고 한국 내 세계화 바람과 해외여행 붐에 편승해 뉴질랜드 남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났다. 1999년에는 뉴질랜드 정부가 장기사업비자 제도까지 도입해 또 한 차례 이민 붐이 불어 남섬 한인사회가 크라이스트처치뿐만 아니라 더니든 등 여타 지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어학연수 및 조기유학 붐과 맞물려 유학생과 가족들도 많이 늘어나 2000년대 초 중반 무렵에는 남섬 전역에 크라이스트처치 4천~5천여 명 교민을 포함해 다른 지역 교민과 유학생, 가족, 워킹 홀리데이 젊은이들까지 합치면 1만여 명 가까운 한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2011년 2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발생한 규모 6.3의 대지진으로 교민들이 오클랜드를 비롯한 타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고 유학생들이 떠난 빈자리도 새로 채워지지 않으면서 현재는 거주 한인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역대 한인회장

1대 이성방 1991. 7 – 1993. 7

2대 김상희 1993. 7 – 1995. 5

3대 김용관 1995. 5 – 1997. 7

4대 이성방 1997. 7 – 1999. 7

5대 김용관 1999. 7 – 2001. 9

6대 정태경 2001. 9 – 2003. 8

7대 김종렬 2003. 9 – 2005. 7

8대 윤용제 2005. 7 – 2007. 4

9대 엄대윤 2007. 4 – 2009. 4

10대 박기성 2009. 4 – 2011. 4

11대 윤교진 2011. 5 – 2013. 5

12대 윤교진 2013. 5 – 2015. 5

13대 양정석 2015. 5 – 2017. 5

14대 이정은 2017. 5 – 2019. 5

15대 윤교진 2019. 9 – 2021. 5

16대 메리 윤 2021. 5 –